'갤러리' 연 박재동 화백, 어떤 인물일까.

10~11일 서울 중랑구 '박재동 갤러리' 개관식

기자뉴스 김철관 기자 | 입력 : 2024/05/11 [20:41]

▲ 박재동 화백이 11일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기자뉴스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의 '박재동 갤러리'가 10일 서울 중랑구 망우리에 개관했다.


개관 첫 전시 주제는 '뿌리'이다. 박 화백의 이번 전시작품은 유년기부터 그린 작품을 볼 수 있고,  특히 초중고 시절 그린 그림 뿐만 아니라 그가 제일 아낀 '만화'도 선보였다.

박재동 갤러리 개관 기념식이 지난 10일 오후 3시 서울 중랑구 양원역로 '박재동 갤러리' 정문에 이어 11일 오후 3시, 우천 관계로 갤러리 인근에 있는 주민공유공간 '꽃망우리' 회의실에서 열렸다.

개관식에는 박 화백과 평소 친분이 있는 만화가 허영만, 김동화, 이두호 작가를 비롯해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김언호 한길사 대표, 우희종 서울대 명예교수 등 많은 문화예술인과 지식인들이 다녀갔다.

박재동 화백은 11일 개관 기념 인사말을 통해 "어린 시절 만화방 아들이 돼 만화도 많이 보고 그림도 실컷 그렸다"며 "대학원을 다닐 때부터 예술활동의 줄기는 작품활동과 교육, 두가지 였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리켜 거목이라 하지만, 나는 아직도 자라고 있는 나무"라며 "이제 다시 여기 '박재동 갤러리'에서 새로운 꽃을 피우려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축사를 한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백재동 갤러리 공간이 서울 변두리에 마련됐는데, 제가 60년말부터 70년대초까지 사회부 기자를 했는데, 공간에 대해 서울의 변두리를 취재한 경험이 있다"며 "변두리에 뉴스가 있고, 변두리에서 사건이 만들어진다고 늘 들었다, 박 화백의 미술관이 망우리 변두리, 이곳에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좋다"고 운을 뗐다.

이어 "몇 십년 전, 제가 바로셀로나 피카소가 태어난 곳을 가본적이 있는데, 거기도 하도 어릴적 그림들이 전시돼 있었다"며 "오늘 어린시절 그린 그림 전시를 보고 '박재동이 피카소를 능가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극찬했다.  

우희종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 화백이 그동안 쌓아온 미술계의 업적은 이미 높이 평가되고 있고, 현재도 진행형"이라며 "박재동 갤러리 개관의 자리가 마련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라고 덧붙였다.  

박재동 화백의 55년의 벗 이상석 씨는 "박재동의 뿌리는 고향산천이요, 고향사람들임을 우리는 안다"며 "그러나 고향 정지 벽에 켜켜이 낀 숯검정까지 사랑하는 그를 보며 다시 알았다, 그의 뿌리는 깊고 섬세하다"고 작품을 평했다.

개관 행사에 많은 가수, 시인 등이 참가해 노래 공연과 시낭송을 했다. 

한편 이번 전시된 작품 중 가장 오랜된 1960년(초등학교 2학년대)에 그린 '우리마을에서 본 풍경'은 외삼촌이 도화지 백 장을 주며, 하루 한장씩 그리라고 해 그린 첫 번째 작품이다.

이날 박 화백은 "네 살 때 날아다니는 잠자리 헬기를 보고 땅바닥에 그렸는데 너무 잘 그려 깜짝 놀랐다"며 "어린 시절엔 새싹들도, 소나무도, 울타리 나뭇가지들도 우리 반 아이들이 다르듯이 하나하나 다 구별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곱 살 때쯤 바다를 처음보고 반해 종이도 크레용도 없어 장판에 송곳으로 찍어 그림을 그렸더니 아버지 어머니가 와서 잘 그렸다고 하셨다고 하였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재동 화백의 첫 번째 전시주제 '뿌리'에 대한 작업노트이다.

"'나는 네 살때 내가 화가인 줄 알았다' 그림 외에 한번도 다른일을 생각해 본적이 없으며 화가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나의 뿌리, 그 첫 번째는 자연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고향 울산, 시골에서 자라며 선물처럼 듬뿍 받았다. 초중고 시절 만화방을 하시던 부모님 옆에서 만화도 맘껏 보고, 그림도 실컷 그렸다. 부모님은 오랜 기간 만화방에 초갑질 을하던 출판사의 권력에 맞서 끝까지 싸워, 끝끝내 이기셨다. 

그 투쟁의 과정과 승리의 기억이 내 예술의 두 번째 뿌리다. 이 두가지 뿌리로 1980년대 초에 미술 동인 '현실과 발언'에 참가하여 민중미술 활동을 하였다. 1988년 <한겨레신문> 시사만평 '한겨레 그림판'을 담당하여 그리게 된 것부터 요즘 내가 광장에 나가 촛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그 뿌리에서 자란 가치다." 

▲ 박재동 화백의 전시작품들  © 기자뉴스


박재동 화백은 1952년 울산 범서읍 서사리에서 아버지 박일호와 어머니 신봉선 사이에 태어났다. 태어 날 당시 아버지는 6.25 전쟁으로 군에 징집됐다. 

1955년 4살 때 '나는 네 살 때 내가 화가인 줄 알았다'는 말을 했다. 1961년 만화방 아들로 만화도 많이 보고 그림도 실컷 그렸다. 1962년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림의 부흥기였고, 1963년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림의 완숙기를 경험했다.

1968년 재수를 하다 학원에서 만난 친구 (이)상석을 만나 인생을 배웠다. 1969년 부산고등학교 미술실에 붙들어 살았고, 1970년 고등학교 시절 정학을 당한 후 '인생의 그림'을 남겼다. 1972년 서울대 회화과 입학하자, 어머니가 '만화방 아들도 서울대에 붙었다'고 좋아했다.

1979년 휘문고 교사, 1980년 서울대 대학원 미술교육 전공으로 진학했고, 1984년 미술동인 '현실과 발언'에 참여했다. 1986년 김선화 여사와 결혼해 손바닥만한 부엌에 장롱을 놓고 둘이 누우면 꼭 끼는 좁은 방에서 신혼 살림을 했다. 이 때 교사를 그만두고 출판사 금성아츠프로덕션 실장으로 근무했다. 1988년부터 <한겨레신문사> 편집부에서 시사만화를 그렸다.

1997년 우리만화연대 회장, 1998년 MBC 뉴스데스크 '박재동의 TV만평' 감독,  2002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 2009년 <한겨레신문> '손바닥 아트' 연재,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부천국제만화축제운영위원장, 2011년 서울시교육청 혁신학교 운영위원장, 2015년 경기도 꿈의 학교 운영위원장, 2016년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운영위원장, 2020년부터 거리의 화가로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시민 얼굴 그리기'와 <경기신문>에 만평을 연재했다.

2023년부터 촛불행동 고문과 촛불정치학교 교장으로 할동하고 있다. 2024년 5월 '박재동 갤러리'를 개관했다.

▲ 전시작품 중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린 작품이다.  © 기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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