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 사고, 심정지, 암 등 어떻게 죽든 인간은 죽는다. 이것은 진리이고 법칙이다. 죽음은 차별을 두지 않고 공평하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학식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언젠가 올 죽음을 전제로 한다.
그럼 죽음은 마냥 두렵고 슬픈 일일까.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며 오랜 기간 가까이 지낸 한 작가의 부친이 지난 2017년 음력 5월 7일 오후 2시경 작고했다고 한다. 7남매를 둔 고인이 영면한지 올해로 6주기를 맞는 셈이다. 생전 마지막 날이 제사이니 음력 5월 6일(7월 23일)이 기일이었다. 기일을 맞아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경기 동두천과 포천의 경계에 있는 왕방산 주변 ‘예래원’이란 사설 묘역에 갔다.
사설묘역이지만 국립서울현충원이나 국립대전현충원처럼 묘역처럼 제법 잘 단장돼 있었다. 이곳에 들리기 전, 제사를 모시기 위해 고인이 평소 즐겼던 피자, 참외, 바나나, 소주, 음료수 등과 향불을 피우기 위한 향도 샀다.
그리고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서 승용차로 1시간 20여분 정도 가니 ‘예래원’이라는 묘역이 나왔다. 줄지어 있는 여러 묘역을 보며, 승용차로 비탈길을 오르니 ‘별마루’란 쉼터가 있었다. 작가와 각자 별마루 화장실에 들려 일을 본 후, 손을 씻었다. 예래원의 별마루는 ‘고인을 추모하며 가족이 쉬어가는 의미로 마련된 쉼터’였다.
하지만 아무 인기척이 없는 쉼터는 썰렁했고, 쉼터 공간은 굳게 잠겨 있었다. 다시 승용차를 타고 300여 미터쯤 가니, 고인의 부친의 묘가 나왔다.
묘비 ‘長水黃公 榮洙 之墓’라고 쓴 한자 밑에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제사를 지낼 석상 앞에는 고인의 영정 사진과 7남매가 고인에게 남긴 문구가 보였다. 읽으니 부친의 죽음에 대한 자녀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투명스러운 말투 속에 사랑이 숨어 있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거친 손마디에 사랑이 배여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아빠의 넓고 크신 사랑을 떠나시고 난 뒤에 알았습니다. 눈물 나게 그리운 아빠,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하겠습니다. - 아빠의 7남매 올림 -”
석상에 미리 준비한 음식을 차렸고, 향도 피웠다.
소주와 음료수를 따르고 재배(再拜)를 올렸다. 상석 정면에 붙어 있는 고인의 사진을 보며 묵도를 했다.
그리고 고인을 추모하며 고인에게 ‘작가 모친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추도사를 했다. 물론 얼마전 입원을 한 작가의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는 탓에 작가에 대한 고인의 각별한 애정을 당부하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뙤약볕에서 1시간 여 앉아, 추모를 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 가지고 간 우산으로 가림 막을 쳤다. 이후 작가와 함께 묘등 잔디 곳곳에 난 잡초를 제거했다. 가지고 간 음용수로 고인이 묻힌 잔디에 물을 뿌리기도 했다.
이 시각 작가 왈 “아까 처음 본 영정 사진은 슬픈 모습같이 보였는데, 제사를 지내고 나니, 활짝 웃고 있는 느낌이 든다”며 “차려놓은 음식을 함께 먹자”라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배가 출출했다. 석상에 차려 놓은 음식으로 음복(飮福)을 했다. 먼저 피자를 한 조각씩 손에 쥐고 먹으며, 바나나와 참외도 곁들었다. 석상에 차려 놓은 음용수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재배(再拜) 한 후, 제사의 예를 모두 마쳤다.
서울로 상경해 늦은 밤 너무 피곤해 잠을 청했는데 ‘하얀 삼베옷에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나타나 맑은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묘에서 본 영정 사진과 흡사했다. 놀라 깨보니 꿈이었다. 곧바로 작가에게 그 얘기를 전해 줬다. 작가는 "제사를 지내줘 좋아서 아빠가 나타났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4월 1일, 만우절 날, 동생에게서 휴대폰으로 거짓말 같은 비보가 전해졌다. 그동안 비교적 건강했던 부친이 영면했다는 것이었다. 사흘 장을 치르고 난후, 동료들은 그나마 구순을 넘긴 부친을 두고 ‘호상’이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2011년 모친에 이어 부모를 모두 잃은 탓인지 ‘고아’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작가의 부친과 나의 부친이 하늘나라로 갔고 영생할 수 없음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진리였다는 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마지막인 죽음의 절차를 따라야 하는 것이 법칙으로 굳혀져 있다.
그래서 삶은 죽음의 연장이고, 죽음은 삶의 연장인지 모른다. 태어남이 기쁘 듯 죽음도 슬픔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생각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 친숙해 지는 것이 삶을 충실하게 사는 지혜가 아닐까.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생에 대한 터무니없는 욕망과 지나친 집착이 많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죽음도 삶과 같이 아름답게 느끼고 해석하면 어떨까. 시기와 때만 다르지 누구나 맞이할 죽음을, 마냥 슬프고 우울하게만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세상의 모든 억압에서 풀려난 자들이 죽음에서 누리는 축복을 ‘평화와 안식’이라고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영국 스트랫퍼드 성삼위교회 내 묻혀 있는 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의 석판의 글이 마음을 울린다.
“친애하는 이여, 부탁하노니, 여기 묻힌 이를 파내지 말기를, 이 석판을 건드리지 않는 이에게 복을, 내 유골을 움직이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기를.”
죽은 자는 이제 세상살이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평온한 안식(安息)을 누리고 있으니 이를 방해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작가의 부친과 나의 부모의 극락왕생과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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