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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시조 창안자 박진환 시인, 등단 60년-300권의 시집 눈길
[인터뷰] '조선문학' 주간 어화당 박진환 시인
 
기자뉴스 김철관 기자 기사입력  2020/10/02 [11:56]

 

▲ 등단 60년, 시집 300여권에 3만 4천 여편의 시 수록한 풍시조의 창시자 박진환 시인이다.     ©기자뉴스

“나는 스스로 ‘광기의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학이란 한 곳에만 집중하는 저 같은 광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부터 풍시조(諷詩調)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는데, 학계에서 ‘풍시조의 창시자’라고 일컫고 있는 것도 보람이다.”

 
올해로 등단 60주년, 시집 300여 권에 3만 4천여 편의 시를 쓴, 경이로운 기록의 소유자 박진환(85) 원로시인을 만났는데, 그가 강조한 말이다. 지난 9월 26일 오후 4시 서울 인사동 한 찻집(귀천, 천상병 시인을 그린 찻집)에서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제자와 후학들의 주최로 이날(9월 26일) 오후 2시 서울 출판문화회관 5층에서 ‘박진환 시인 등단 60주년, 시집 300권 발간 기념행사’를 하려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으로 하지 못하고, 박 시인이 주간인 <조선문학> 11월호를 통해 ‘지상 비대면 자축연’이란 타이틀로 행사를 대신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럼 박진환(1936~ ) 시인. 그는 누구일까.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가을의 시’가 동탁 조지훈 선생의 선으로 입상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1963년 <자유문학> 신인상에 문학평론 ‘수난기의 유산’이 당선된 이후, 문학평론가로도 진가를 발휘했다. 즉 1960년대부터 2020년까지 60여 년간 시창작과 비평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그는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61년 <동화통신> 입사했으나 5.16군사쿠데타로 병역기피자가 돼 군대에 입대했고, 63년부터 73년까지 <대한일보> <현대경제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등에서 술로 세월을 보내는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지난 73년 10여 년간 활동했던 신문기자를 접고, 아내가 경영한 가구점에 종사하며, 이때부터 다시 문학에 전념했다. 그는 95년부터 10여 년간 한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와 예술대학장을 맡아 후학을 길러냈다. 73년 첫 시집 <귀로>를 출간했다. 이후 2020년 <통징일기>(28권)를 냄으로써 302권의 시집을 출간하게 됐다. 특히 302권의 시집에는 3만 4천여 편의 시를 수록했다.
 
먼저 박 시인은 제자들과 후학들이 마련한 ‘등단 60주년, 시집 300권 기념행사’가 코로나19 전염병 확산으로 못하게 된 점을 몹시 아쉬워했다. 하지만 자신이 발행하고 있는 <조선문학> 11월호를 통해 사람이 모이지 않는 ‘지상 비대면 자축연’을 첫 시도한 점도 새로운 발견이고 개척이라는 점에서 흐뭇하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제자들이 축하연 행사를 하자고 했다. ‘박진환 시인 등단 60년, 시집출간 300권’을 제자들이 축하를 해주고 싶다는 의미였다. 제자들이 9월 26일 출판문화회관으로 장소를 잡아 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쉬움이 있지만 국가적 재난인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해 대면행사가 되지 않아 ‘지상 비대면 자축연’으로 하기로 했다. 제가 발행하고 있는 월간지 <조선문학> 11월호에 몇 분의 축사를 게재하고, 제 작품세계를 조명한 홍신선(전 동국대 교수) 시인은 일반 시에 대해, 조신권 시인(문학평론가, 연세대 명예교수)은 풍시조에 대해 조명한 글을 보내왔다. 이를 11월호에 게재할 것이다.”
 
실제 11월호에 실릴 홍신선(전 동국대 교수) 시인의 글은 ‘이치의 시학과 형이상학 시법’이란 제목으로 박진환 시인의 일반시를 조명했다.
 
“박진환 시인은 그동안 시집과 평론집, 그리고 연구학술서 등에 걸쳐 명실상부, 등신대의 업적을 쌓고 있다. 첫 시집 <귀로> 이후 근년의 <통징일기>에 이르기까지 302권을 상재하고 있다. 평론집 역시 <한국시와 전통>을 비롯하여 <풍시조 미학>까지 대략 20권을 출간하였다. 이 같은 방대한 작품량은 한국현대시사에서 대단히 이력적인 일이라고 할 것이다. 한 시절 조병화 시인의 40여 권의 시집이, 그 다량의 시집 수에 있어 우리문단에 회자된 바 있다. 그러나 박진환 시인의 저러한 작품량과 시집 수에 비하면 그 40여 권의 시집을 많다할 수는 없을 터이다.” -홍신선 시인(전 동국대 교수)
 
참고로 이날 박 시인은 첫 시집<귀로>의 의미에 대해 ‘신문기자(기사)에서 시인(시)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 시인이 추구한 ‘이치의 시학과 형이상학 시법’을 적용한 일반시 ‘하야’의 전문이다.
 
 
하(夏) 덥다
야(夜) 시원하다
하야보다 더 시원한 건 없을까? 하야(下野)
 
 
언뜻 시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웃음은 잠시, 이후 편치 않은 쓴 맛으로 바뀐다. 여름밤이란 한자어인 하야를 덥고 곧 여름밤이 아닌 정치적 의미의 하야로 전복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야라는 말에 왠지 이승만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스쳐간다. 국민들의 언성의 대상인 권력이 무너질 때 국민들이 시원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박 시인은 현재도 컴맹이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아직도 원고지 맨이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식처럼 할 수 있는 기사 검색도 모른다. 아직도 2G폰이다. 등단 60여 년간 육필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폰맹인 김춘수 시인의 얘기를 꺼냈다.
 
“폰맹이 있듯이 나는 컴맹이다. 휴대폰 사용도 굉장히 불편하다. 확인만 하면 되는데 활용할 줄 몰라서이다. 과거 김춘수 시인은 폰맹이었다. 전화를 받을 줄 몰랐다. 김 시인과 생전에 굉장히 친하게 지냈는데, 한번은 김춘수 선생 집 앞에서 다 왔다고 전화를 했더니, ‘아니 어떻게 해서 우리 집 옆에서 전화를 하느냐’고 하더라. 그리고 자꾸 물어봤다. ‘사무실 전화를 휴대폰으로 돌리면 어디서든지 걸 수 있고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또 물어보더라. ‘어떻게 해 사무실로 전화를 했는데,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지 않고 다른 곳에서 받느냐’고. 18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의문을 풀지 못하고 가셨다. 그 양반이 진짜 시인이었다. 그런데 나는 컴맹이라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지 못한다.”
 
이어 그에게 진정한 시의 의미를 물었다.
 
“20세기는 모더니즘 시였다. 21세기 들어와 어떤 유의 시가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최고의 시가 될 것이냐를 세계적 문호들이 고민했다. 결론은 17세기 시인 형이상학시법이었다. 최고의 시는 형이상학 시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은 있어도 형이중학은 없다. 그래서 나는 형이중학이라는 책을 냈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이 시이기 때문이다.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시이다. 아름다운 미를 창조하는 것이 시이다. 지금은 미(아름다움)만 가지고 시가 되지 않는다. 감각적인 것이 미이다. 정신적인 미와 합쳐져야 시가 된다. 형이상학은 높은 차원의 생각이나 관념이나 일상을 초월한다. 적어도 시가 되려면 형이하학적인 감각으로 해석하는 것들과 합쳐져 융합이 돼야 한다.” 
 
그는 92년부터 <조선문학> 발행인 겸 주간을 맡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지원금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독기를 가지고 운영해 왔다고도 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지원 받지 않고 운영해 온 이유가 있다. 이창동 영화감독이 문화부장관을 할 때의 일이다. 당시 서라벌 출신이 이 장관 밑에 일을 했는데 지원금 리스트 잡지 24권 중 내가 모르는 잡지가 20권이나 됐다. 아는 잡지가 현대문학 등 4권뿐이었다. 정실로 지원을 해줬다는 얘기이다. 잡지 같지도 않은 것을 지원하고, 진정한 잡지는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을 하고 있다. 죽는 날까지 자비로 할 것이고 정부지원 일체를 받지 않겠다. 올곧은 문학을 위해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홀로 독기로 지금까지 해왔다. 그래서 내가 추구하고 있는 문학은 독기라고 말할 수 있다.”
 
박 시인은 그동안 일반시집 18권, 삼행시 20권을 냈고, 나머지는 모두 풍시조(諷調)를 썼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그를 ‘풍시조의 시조’라고 말한다.

 
“풍시조에 대한 평가로 분명한 것은 내가(박진환) 시조라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풍시조의 창안자, 발명자, 아버지, 기수 등으로 불린다. 문학에서 없는 장르인 풍신조라는 장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술원이나 예술원 등에서 풍시조의 창안자라고 말한다. 자랑을 할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없는 장르를 만들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그런 말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풍시조만을 하루 10편정도 써야 저의 일과가 마무리 된다. 그것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병원에 입원을 해서도 10편을 썼다. 지금까지 3만 4천여 편의 시를 썼는데 잘한 것이 있다면 풍시조를 쓴 것이다. 앞으로도 풍시조를 쓸 것이고 풍시조라는 새로운 장르가 한 시대의 육성으로 널리 메아리쳤으면 좋겠다.”
 
그럼 풍시조(諷詩調)란 뭘까. 박 시인에게 물어봤다.

 
“풍시조란 풍(諷)은 풍자하다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면 풍자하는 투로 시를 쓴다는 의미이다. 풍자시가 있는데, 풍자 자체가 아니고 풍자에다 21세기의 시법이라고 할 수 있는 형이상학시법을 가미한 것이다. 최첨단을 걷고 있는 현대시에서의 시법 그대로 원용을 해 풍시조를 삼행으로 쓰고 있다. 삼행으로 쓰려면 엄청나게 글을 축소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 많은 시인들이 쓰고 싶은데 흉내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나 할까. 최근도 <통징일기, 痛懲日記>란 시집에 풍시조를 게재하고 있다. 통징일기란 ‘엄중하게 징벌하는 의미의 일기’라는 뜻이다.”
 
조신권(연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시인이 <조선문학> 11월호에 게재할 ‘풍시조의 아버지 박진환의 풍시조’란 제목의 글에서 박 시인의 업적을 기록해 놓았다.
 
“어화당(語畵堂) 박진환 시인은 지금까지 60년간을 순수한 시적 열정으로 시창작과 비평 활동을 해오고 있는 원로시인이요. 평론가요. 교수요. 박사이며 풍시조의 창시자이다. 뿐만 아니라 1992년부터 현재까지 월간지 <조선문학>을 창간한 후 비정한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매달 한 호도 빠짐없이 발행하여 지령 353호를 기록한 것은 실로 경탄할 만한 일이다. 그는 여러 대학에 출강하여 시 창작 이론과 실제 등을 강의하며 시어와 시법을 절차탁마하고 연마했으며, 그 시법을 적용하여 무려 302권의 시집을 펴내고 20여 권의 논저를 출간한 한국문단의 엘리트 문인이다. 기발하고 독특한 기상천외의 시법을 가지고 있는 17세기 영국의 형이상시학 시인들로부터 그 시법을 익혀서 박 시인은 풍시조 시법을 개발 정립하였다.” -조신권 시인(연세대 명예 교수)
 
제284권 째의 시집인 <통징일기(痛懲逸驥), 10권> 시집에 수록된 풍시조 ‘견자이기 때문’을 소개해 본다.
 
 
견자(見者)이기 때문
 
눈은 시인이다, 그러나 진짜 시인은 육안 아닌 심안이다
보지 않고도 보는, 볼 수 없어도 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그런
눈과 함께, 보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을 볼 줄 아는 눈이 견자이기 때문
 
 
박 시인은 풍시조의 7가지 미학으로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게 한 컨시트(conceit) 기법 ▲재빠른 이동이나 전환의 지적능력을 의미하는 위트의 기법 ▲엄한 징벌적 통징의 기법 ▲상반되고 상충되는 대칭의 양극화 기법 ▲동음이의어로 이루어지는 펀(pun) 기법 ▲모순의 불쾌감을 정복하고 상쇄하여 쾌감을 주는 해학의 기법 ▲일종의 정서와 정화에서 체험하는 기쁨이자 감동인 카타르시스 기법 등을 밝혔다.
 
박 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출생해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 문학석사와 중앙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입선한 후, 63년 <자유문학>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84년 제9회 시문학상, 85년 제3회 소청문학상, 88년 동백예술상, 93년 한국비평문학상, 95년 고산문학상, 99년 동국문학상, 2006년 한국펜문학상, 2008년 윤동주문학상, 2015년 한국문학상, 2020년 문덕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첫 시집 <귀로>에 이어 <사랑법>, <꽃시집>, <박진환시전집, 1-17권>, <정유년 풍시조 일기, 1-42권>, <통징일기, 1-28권> 등 제302권의 시집이 있다. 평론집으로 <한국현대시인론>, <21C 시학과 시법> 등이 있다.

▲ 이날 박진환 시인 인터뷰에는 시인인 진관 스님, 시인 진천문 조각가가 함께 했다.     © 기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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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02 [11:56]  최종편집: ⓒ 인터넷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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