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 언론·미디어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고 박원순 시장, 장례식을 보면서 느낀 점
고 박원순 시장의 명복을 빕니다.
 
기자뉴스 김철관 기자 기사입력  2020/07/14 [17:56]
▲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영결식이 끝나고  유가족들이 나오고  있다.     © 기자뉴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3일 오후 경남 창녕 선영에 잠들었다.

 

13일 오전 서울대병원 발인부터 서울시청 영결식 그리고 서울추모공원 화장까지 함께 했다. 하지만 고인의 고향인 창녕 선영까지는 가지 못했다. 지난 10일부터 13일 새벽까지 서울대장례식장 빈소와 그곳 주변에서 지인들과 얘기하며 줄곧 있었다.

 

지난 10일 낮에는 박 시장을 고소한 피해자와 연대를 한다며 장례식장(빈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의 낮선 풍경을 보고 이해를 하면서도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냐하면 피해자 측의 공식 입장이 없었고 그 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와 그 정보를 이용한 언론보도를 믿고 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장의 장수도 사망을 하면 전쟁을 멈추고 조의를 표하고 다시 전투를 시작한다는 어느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가 든 팻말에는 박원순을 고발한 피해자분과 연대합니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라고 썼다. 정세랑 소설가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를 인용한 글이었다.

 

한편으로 엄숙한 장례식장에서 누구나 예스라고 할 때 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용기가 내 자신의 성찰을 요구한 것도 같았다.

 

장례식장 정문 앞에는 취재진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더운 날씨에 땅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사진을 촬영하고 조문을 온 유명 정치인들에게 한마디 소감을 들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 박원순 시장 사망과 관련해 억측과 추측으로 기사를 써 삭제하거나 오보를 낸 기자들도 이곳에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특히 이번 고 박원순 시장 성범죄 의혹과 관련해 사법적 판단이 있기도 전에 언론의 추측 보도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일부 언론들은 사법당국이나 경찰이 흘리는 정보이거나 인터넷상에 떠도는 정보를 아니면 말고식의 확인 없이 뉴스로 내보냈다. 특히 피해자 측의 공식 입장이 없는 상태에서 사법당국이 미리 언론에 흘려 여론을 움직이는 유착의혹도 떠올랐다. 이 때문에 현재 채널A로 인해 검언유착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때, 사법개혁과 언론개혁의 필요성이 새삼 느껴지기도 했다.

 

10일 오후 330분경 장례식장 정문을 지나 열 감지기 카메라에 모습을 비추고, 휴대폰 번호를 기록하고 소독을 한 다음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빈소로 향했다. 1층 복도에 들어서자 과거 고 박원순 시장의 활동과 관련한 영상이 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7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고 조영래(1947~1990) 변호사와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고 박원순(1956~2020)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함께 했던 기록물이었다. 경기대 선후배 사이로 사법연수원에서 인연을 맺고 조 변호사의 권유로 1984년부터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두 변호사를 주제로 했다.

 

생활적 거리두기로 줄을 서 2층에 계단과 3층 계단을 올라 고인의 빈소 앞에 도착했다. 10여명의 조문객들과 나란히 줄지어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영정 앞에 바치며 첫 조문을 했다. 이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허영 국회의원, 윤준병 국회의원 등이 상주역할을 했다. 특히 빈소를 지키던 조희연 교육감은 고 박원순 시장과 친밀한 관계에 있던 서종수 서울노총 의장 등 노동계 인사를 보자, 손을 잡고 부둥켜안고 서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토요일인 11일 오후 서울지하철 혜화역에서 내려 서울대병원을 향해 걸었다. 병원 안 지름길을 이용해 빈소로 가는데 창경궁 후원으로 정조 때 경모궁이라고 일컬었던 경모궁 발굴조사 현장을 우연히 목격해 잠시 그곳을 지켜봤다. 경모궁은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 제국 대학으로 이용되기도 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지름길을 이용해 10여분을 걸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2층 영접실에서 조문을 온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민병덕 국회의원 등과 인사를 했고, 2층에 설치한 영상물에는 생전 고인이 활동이 나오고 있었다. 영상의 자막에 깨끗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박원순 시장은 현장에서 활동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 빈소에 앞에 설치된 팻말들이다.     © 기자뉴스

 

2층 지근거리에 설치한 원순씨에게 못다 한 말’, ‘기억하고 이어 갈게요’, ‘시장님, 우리시장님등 제목의 메모판에 붙인 포스트잇에는 추모 글들이 이어졌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한 당신의 헌신은 절대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살아계실 때, 한번쯤은 뵙고 싶었는데...이런 선택을 할 줄 몰랐습니다.’ 등의 내용으로 포스트잇이 빼곡했다. 특히 당신은 희망이었습니다, 기억하고 이어갈게요.’라는 푸른 글씨체 팻말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발인을 하루 앞둔 12일은 일요일이었다. 장례식장 정문에 여전히 기자들이 취재를 하느라 모여 있었다. 2층 영접실에 조문을 기다리던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등 기자협회 일행과 악수를 하고 함께 조문을 기다렸다. 3층 빈소에서 종교의식(추모식)이 거행돼 두 시간이 지나 조문을 할 수 있었다.

 

지난 10일 첫 번째 조문은 조희연 서울교육감 등 고인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상주역할을 했다, 두 번째 조문 때는 지난 11일 저녁 늦게 영국에서 귀국한 고인의 아들 박주신 씨가 이날부터 상주로 나섰다. 조문이 개시되자 조문객들은 차례대로 조의를 표했다. 나도 빈소 영정에 국화 한 송이를 다시 올려놓았다. 옆에 있는 상주인 고인의 아들에게 안타깝다, 용기내라는 짧은 말로 위로를 건넸다.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인지 얼굴이 핼쑥해 보였다.

 

조문이 끝나고 2층 영접실에서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저녁 630분 쯤 지인들과 함께 혜화동으로 나가 고인을 그리워하면서 국밥과 술로 시간을 보냈다.

 

월요일인 13일 아침 서울대 장례식장에서 발인제가 열렸다. 발인제가 끝나고 운구차에 영정을 실고 고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지인들과 이 모습을 보면서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시청 다목적홀로 향했다. 다목적홀 영결식 참석자를 100여명으로 제한한 탓에 지인 대부분이 참석치 못했다.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영결식이 거행된 동안 유튜브로 생방송 영결식을 보았다.

 

고민정 의원의 사회로 공동장례위원장들이 조사를 했다. 공동장례위원장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사를 통해 박 시장, 이렇게 갑자기 가시니 비통함을 넘어 어이가 없다사는 동안 나도 뜻밖의 많은 일을 겪었지만 내가 박원순 당신의 장례위원장 노릇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20년 터울의 늙은 선배가 인런 자리에 선 것이 옛 법에 맞는지도 모르겠다우리사회를 크게 바꾸어놓았던 시민운동가였고, 시장으로서 줄곧 시민들과 가까운 곳에 머물던 당신을 떠나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오늘우리는 황망하게 떠나신 당신과 마지막인사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했다, 많은 분들이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서울시장 박원순 과의 이별을 참으로 애석하게 느끼고 있다제 친구 박원순은 저와 함께 40년을 같이 살아왔다, 하루 전날 부동산 대책을 논의했는데, 제가 장례위원장으로 여기 있다는 것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오늘 우리는 박원순 시장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된 여정이었지만 그는 시민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20111027일부터 3180일간 박원순 시장께서는 올곧게 지켜온 시민의 길을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는데 표준이 됐다고 전했다.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곳 영결식을 하고 나온 출발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영결식이 끝나자 곧바로 지인이 메시지로 사진을 보내왔다. 곧바로 승용차를 타고 고인이 화장을 할 서울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다. 도착해 그곳에서 30여분을 기다리자, 운구차에 실은 고인의 유해가 도착했다.

 

미리 도착한 미망인 강란희 여사, 아들 박주선, 딸 박다인 등 유족들이 유해를 맞았고, 이낙연 국회의원, 박홍근 국회의원 등 정치인과 고인의 지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윤준병 국회의원,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민병덕 국회의원,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회 위원장 등이 운구차에서 고인의 유해를 옮겨 화장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화장 의식이 진행되자, 지인들과 지지자들의 통곡이 이어졌다. 눈물이 앞을 가려 힘든 하루였다. 13일 늦은 오후 고 박원순 시장이 경남 창녕 선영에 잠들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고인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고 박원순 시장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

▲     © 기자뉴스

 

▲     © 기자뉴스

 

▲ 고 박원순 시장이 잠든 묘역     © 기자뉴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20/07/14 [17:56]  최종편집: ⓒ 인터넷기자협회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고 박원순 시장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