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작가가 지은 <언어의 온도>(말글터, 2016년, 8월)에서 나온 말이다.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니라, 가슴에도 새겨진다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이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이고, 우리는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한다고.
이 책은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 그런 언어가 지닌 소중함과 절실함을 담았다.
“어제 노트북을 켜고 ‘사람’을 입력하려다 실수로 ‘삶’을 쳤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세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 - 본문 중에서
그럼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에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났다면 ‘말 온도’가 너무 뜨거웠던 게 아닐까. 한두 줄 문장 때문에 누군가 당신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다면 ‘글 온도’가 너무 차갑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섬세한 것은 대개 아름답고 예민하다. 한글은 점 하나, 조사 하나로 문장의 결이 달라진다. 친구를 앞에 두고 ‘넌 얼굴도 예뻐’ 하려다, 실수로 ‘넌 얼굴만 예뻐’라고 말하는 순간,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된다.
“언어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르다.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준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어내고,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에서 위안을 얻는다.” - 서문 중에서
이 책은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글(文), 지지 않는 꽃’, ‘행(行), 살아 있다는 증거’ 등 3개 주제로 구성돼 있다.
‘말, 마음에 새기는 것’
“현실에서 부재(不在)의 존재(存在)가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경우를 더러 경험한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며칠 뒤, 식구들이 모여 외식을 했다.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멸치볶음이 나왔다. 그걸 보자마자 너 나할 것 없이 일제히 눈물이 쏟아졌다.” -본문 ‘부재의 존재’중에서
아버지가 생전에 멸치볶음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다. 멸치볶음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그 생각이 나서,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자꾸 마음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글, 지지 않는 꽃’
자식에게 어머니는 씨앗 같은 존재다. 어머니는 생명의 근원이다. 대지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돌봄을 받는다. 그래서 어떤 자식들은 입을 벌려 어머니의 ‘어’하는 첫 음절만 발음해도, 넋 나간 사람처럼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쏟아낸다.
어머니 시신을 모신 관이 흙에 닿는 순간을 바라보며 ‘묻는다’는 동사를 쓰지 않고 어머니를 ‘심는다’라고 표현했다. 문인수 시인의 ‘하관‘이란 시에서이다. “이젠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 본문 ’어머니를 심는 중‘에서
‘행, 살아 있다는 증거’
분노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지 모른다. 살다 보면 누구나 상대방을 죽일 듯이 물어뜯고 싶은 순간이 있고 그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경우도 많다. 화(火)를 참지 못해 크나큰 화(火)를 당하기도 한다. 극지에 사는 이누이트(에스키모)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분노의 감정이 스르륵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아두고 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이다.” - 본문 '분노를 대하는 방법‘ 중에서
훨훨 타오르는 분노, 시간이라는 냉각기를 통해서 시켜질 수도 있지만, 격한 감정이 날 망가트리지 않도록 마음속 깊이 되새기는 것이 어떨는지. <저작권자 ⓒ 기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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